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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58

중용혹문 1-5

󰡔중용혹문󰡕1-5 或問: “旣曰: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矣. 而又曰: “莫見乎隱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 何也?”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래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신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공구한다'라고 하고, "은미한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음을 삼간다'라고 하였는데 무엇입니까?" 曰: “此因論率性之道以明由敎而入者其始當如此. 蓋兩事也. 其先言道不可離而君子必戒謹恐懼乎其所不睹不聞者, 所以言道之無所不在, 無時不然, 學者當無須臾毫忽之不謹而周防之, 以全其本然之體也. 又言莫見乎隱莫顯乎微而君子必愼其獨者, 所以言隱微之間人所不見而已獨知之..

번역/중용혹문 2023.05.09

대학혹문 2-2~4

󰡔대학혹문󰡕2-2 曰: “康誥之言‘作新民’, 何也?” "강고에서 '백성을 새롭게 한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曰: “武王之封康叔也, 以商之餘民, 染紂汙俗而失其本心也. 故作康誥之書而告之以此, 欲其有以鼓舞而作興之, 使之振奮踴躍, 以去其惡而遷於善, 舍其舊而進乎新也. 然此豈聲色號令之所及哉? 亦自新而己矣.” "무왕이 강숙을 봉할 때 상나라의 남은 백성들이 주임금의 더러운 풍속에 물들어 그 본심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강고라는 글을 지어 이것으로 고하여 그들이 고무되어 흥기하여 그들로 하여금 떨쳐 일어나 솟아 올라踴躍 그 악을 제거하고 선으로 옮겨서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말소리와 얼굴빛, 그리고 호령함이 미칠 바이겠습니까? 또한 스스로 새롭게 할 따름..

번역/대학혹문 2023.05.09

대학혹문 2-1

󰡔대학혹문󰡕2-1 或問: “盤之有銘, 何也?” "탕 임금의 盤에 있는 명구는 무엇입니까?" 曰: “盤者, 常用之器; 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每警乎心, 而不至於忽忘也.” 盤이란 상용하는 그릇입니다. 銘이란 스스로 경계하는 말입니다. 옛성현은 조심하고 삼가여 실로 경계하고 삼가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태만하고 홀시하는 바가 있어 혹 잊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용하는 그릇에 각기 그 일에 인하여 명을 새겨 치계하였으니, 항상 눈에 접하고 매번 마음에 경책하여 홀연히 잊어버리는 데 이르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曰: “然則沐浴之盤, 而其所刻之辭如此, 何..

번역/대학혹문 2023.05.09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

中庸何為而作也?子思子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而道統之傳有自來矣。其見於經,則「允執厥中」者,堯之所以授舜也;「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者,舜之所以授禹也。堯之一言,至矣,盡矣!而舜復益之以三言者,則所以明夫堯之一言,必如是而後可庶幾也。 중용은 무엇 때문에 지어졌는가? 자사 선생께서 도학이 그 전승을 잃을까 우려하여 지으셨다. 대개 상고로부터 성인聖神이 하늘을 잇고 표준을 세워 도통의 전승이 이어졌다. 그것이 경전에 보인 즉 "진실로 그 中을 잡아라"라는 것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수한 바이다.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精하고 一하여 진실로 그 中을 잡아라"라는 것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전수한 바이다. 요임금의 한 마디는 지극하고 극진하다! 그러나 순임금이 다시 세 ..

번역/중용장구 2023.05.09

중용혹문 1-2~4

󰡔중용혹문󰡕1-2 曰: “率性修道之說不同, 孰爲是耶?” "솔성지위도 설은 다른데, 누가 옳은 것입니까?" 曰: “程子之論率性正就私意人欲未萌之處, 指其自然發見各有條理者而言, 以見道之所以得名, 非指修爲而言也. 呂氏良心之發以下至安能致是一節亦甚精密但謂人雖受天地之中以生而梏於形體又爲私意小知所撓, 故與天地不相似而發不中節. 必有以不失其所受乎天者然後爲道,則所謂道者又在修爲之後而反由敎以得之非復子思程子所指人欲未萌自然發見之意矣. 游氏所謂無容私焉, 則道在我, 楊氏所謂率之而已者, 似亦皆有呂氏之病也. 至於修道, 則程子養之以福, 修而求復之云, 却似未合子思本文之意, 獨其一條所謂循此修之各得其分, 而引舜事以通結之者爲得其旨, 故其門人亦多祖之但所引舜事或非論語本文之意耳. 呂氏所謂先王制禮, 達之天下, 傳之後世者, 得之, 但其本說率性之道處, 已失其..

번역/중용혹문 2023.05.08

대학혹문 1-1~1-5

󰡔대학혹문󰡕1-1 或問: “一章而下, 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 而遂以爲傳之首章也” "일장 이하로 삼장의 반에 이르기까지 정현 본에서는 원래 ‘沒世不忘’ 다음에 있었고, 정자는 ‘此謂知之至也’ 다음에 두었는데 그대는 홀로 어째서 그렇지 않음을 알고 마침내 전의 첫장으로 여긴 것입니까?" 曰: “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審矣.” "경으로써 전을 통섭하고, 전으로써 경에 부합하면 그 순서를 알 수 있으니 두 설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학혹문󰡕1-2 曰: “然則其曰‘克明德者’, 何也?” "그러면 ‘克明德’이란 무엇입니까?" 曰: “此言文王能明其德也. 蓋人莫不知德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物欲蔽之於後, 是以..

번역/대학혹문 2023.05.08

중용혹문 1-1

󰡔중용혹문󰡕1-1 或問: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何也?”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는 무슨 뜻입니까?" 曰: “此先明性道敎之所以名, 以見其本皆出乎天而實不外於我也. 이는 먼저 성,도,교라고 이름붙인 까닭을 밝혀서 그것이 본래 모두 하늘에서 나왔지만 실제 나의 바깥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天命之謂性言天之所以命乎人者, 是 則人之所以爲性也. 천명지위성은 하늘이 사람에게 명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성으로 삼는 바입니다. 蓋天之所以賦與萬物而不能自已者命也. 대개 하늘이 만물에 부여하여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이 명입니다. 吾之得乎是命以生而莫非全體者性也. 내가 이 명을 얻어 태어나 전체가 아님이 없는 것이 성입니다. 故以命言之,則曰: “元亨利貞而四時五行庶類萬化莫不由是而出, 以性言之, ..

번역/중용혹문 2023.05.08

중용혹문0-5

󰡔중용혹문󰡕0-5 曰: “呂氏爲己爲人之說, 如何?” "여씨의 위기, 위인의 설은 어떻습니까?" 曰: “爲人者, 程子以爲欲見知於人者, 是也. 呂氏以志於功名言之, 而謂今之學者未及乎此, 則是以爲人爲及物之事, 而涉獵儌倖, 以求濟其私者, 又下此一等也. 殊不知夫子所謂爲人者, 正指此下等人爾. 若曰未能成己, 而遽欲成物, 此特可坐以不能知所先後之罪, 原其設心, 猶愛而公, 視彼欲求人知以濟一已之私而後學者, 不可同日語矣. 至其所謂立喜怒哀樂未發之中, 以爲之本, 使學者擇善而固執之者, 亦曰欲使學者務先存養, 以爲窮理之地耳. 而語之未瑩, 乃似聖人强立此中以爲大本, 使人以是爲準而取中焉, 則中者, 豈聖人之所强立, 而未發之際, 亦豈若學者有所擇取於其間哉! 但其全章大指, 則有以切中今時學者之病, 覽者誠能三復而致思焉, 亦可以感悟而興起矣.” "남을 위..

번역/중용혹문 2023.05.07

중용혹문0-3, 0-4

󰡔중용혹문󰡕0-3 曰: “此篇首章先明中和之義, 次章乃及中庸之說, 至其名篇, 乃不曰中和, 而曰中庸者, 何哉!” "이 편의 첫장은 먼저 중화의 뜻을 밝히고 다음 장은 곧 중용의 설에 이르는데, 이 편명에 이르면 중화라고 하지 않고 중용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中和之中, 其義雖精, 而中庸之中, 實兼體用. 且其所謂庸者, 又有平常之意焉, 則比之中和, 其所該者尤廣, 而於一篇大指, 精粗本末, 無所不盡, 此其所以不曰中和, 而曰中庸也.” "중화의 중은 그 뜻이 비록 정미하나 중용의 중은 실제 체용을 겸합니다. 게다가 그 소위 용이란, 또한 평상의 뜻이 있으니 중화에 비하여 그 갖춘 것이 더욱 광대하여 한 편의 큰 요지와 정미본말에 다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이것이 중화라고 하지 않고 중용이라고 한 까닭입니..

번역/중용혹문 2023.05.07

중용혹문0-2

󰡔중용혹문󰡕0-2 曰: “庸字之義, 程子以不易言之, 而子以爲平常, 何也?” "庸자의 뜻을 정자는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대는 平常이라고 여겼는데 어째서입니까?" 曰: “唯其平常, 故可常而不可易, 若驚世駭俗之事, 則可暫而不得爲常矣. 二說雖殊, 其致一也. 但謂之不易, 則必要於久而後見, 不若謂之平常, 則直驗於今之無所詭異, 而其常久而不可易者可兼擧也. 况中庸之云, 上與高明爲對, 而下與無忌憚者相反, 其曰庸德之行庸言之謹, 又以見夫雖細微而不敢忽, 則其名篇之義, 以不易而爲言者, 又孰若平常之爲切乎?” "오직 그 평상과 같기에 항상되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세속을 놀라게 하는 일이라면, 잠시될 수 있지만 항상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설은 비록 다르지만 하나에 이릅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면 ..

번역/중용혹문 202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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