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혹문2-1
或問: “盤之有銘, 何也?”
"탕 임금의 盤에 있는 명구는 무엇입니까?"
曰: “盤者, 常用之器; 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每警乎心, 而不至於忽忘也.”
盤이란 상용하는 그릇입니다. 銘이란 스스로 경계하는 말입니다. 옛성현은 조심하고 삼가여 실로 경계하고 삼가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태만하고 홀시하는 바가 있어 혹 잊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용하는 그릇에 각기 그 일에 인하여 명을 새겨 치계하였으니, 항상 눈에 접하고 매번 마음에 경책하여 홀연히 잊어버리는 데 이르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曰: “然則沐浴之盤, 而其所刻之辭如此, 何也?”
"그러면 목욕하는 그릇도 그 새기는 글이 이와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曰: “人之有是德, 猶其有是身也. 德之本明, 猶其身之本潔也. 德之明而利欲昏之, 猶身之潔而塵垢汚之也. 一旦存養省察之功, 眞有以去其前日利欲之昏而日新焉, 則亦猶其疏瀹澡雪, 而有以去其前日塵垢之汚也. 然旣新矣, 而所以新之之功不繼, 則利欲之交, 將復有如前日之昏; 猶旣潔矣, 而所以潔之之功不繼, 則塵垢之集, 將復有如前日之汚也. 故必因其已新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使其存養省察之功, 無少間斷, 則明德常明, 而不復爲利欲之昏; 亦如人之一日沐浴而日日沐浴, 又無日而不沐浴, 使其疏瀹澡雪之功, 無少間斷, 則身常潔淸, 而不復爲舊染之汚也. 昔成湯所以反之而至於聖者, 正惟有得於此, 故稱其德者, 有曰: ‘不邇聲色, 不殖貨利’, 又曰: ‘以義制事, 以禮制心’, 有曰: ‘從諫弗咈, 改過不吝’, 又曰: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此皆足以見其日新之實. 至於所謂‘聖敬日躋’云者, 則其言愈約而意愈切矣. 然本湯之所以得此, 又其學於伊尹而有發焉. 故伊尹自謂與湯‘咸有一德’, 而於復政太甲之初, 復以‘終始惟一, 時乃日新’爲丁寧之戒. 蓋於是時, 太甲方且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而歸, 是亦所謂苟日新者. 故復推其嘗以告於湯者告之, 欲其日進乎此, 無所間斷, 而有以繼其烈祖之成德也, 其意亦深切矣! 其後周之武王, 踐阼之初, 受師尙父丹書之戒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退而於其几席·觴豆·刀劍·戶牖, 莫不銘焉. 蓋聞湯之風而興起者. 今其遺語尙幸頗見於禮·書, 願治之君, 志學之士, 皆不可以莫之考也.”
"사람에게 덕이 있음은 몸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덕이 본래 밝음은 몸이 본래 청결한 것과 같습니다. 덕이 밝지만 이욕이 그것을 어둡게 하는 것은 몸이 청결하지만 먼지와 때가 그것을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존양하고 성찰하는 공부가 진실로 그 전일에 이욕이 어둡게 하는 것을 제거하여 날마다 새로워진다면, 또한 목욕하고 씻어서疏瀹澡雪 전일에 먼지와 때가 더럽힌 것을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새로워졌지만 새로워지는 공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욕이 교합하여 장차 다시 전일의 어두움이 있게 되니, 그것은 이미 깨끗해졌지만 깨끗해지는 공이 이어지지 않으면 먼지와 때가 쌓여 장차 다시 전일의 더러움이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이미 새로워지더라도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롭게 하여 존양성찰의 공부로 하여금 조금의 틈도 없게 하면, 몸이 항상 청결하여 다시 오래 물든 더러움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성탕이 반성하여 성인에 이르게 된 까닭은 바로 오직 여기에서 얻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덕을 칭송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성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재화와 이익을 쌓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의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로써 마음을 제어하였다'라고 하였고, 신하가 간하는 말을 따라 그것을 어기지 않았고弗咈,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사람에게 갖추기를 구하지 않았고, 몸을 검속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하는듯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그 날마다 새롭게 하는 실질을 보기 충분합니다. 소위 '성스러움과 공경이 날로 진전된다聖敬日躋'라고 말하는 데 이르면, 그 말이 요약될수록 뜻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하지만 본래 탕임금이 이것을 얻은 까닭은 또한 그가 이윤에게 배워서 발함이 있기 때문이니, 그래서 이윤은 스스로 탕임금에게 말하기를 '모두 하나의 덕이 있다'라고 하였고, 태갑에게 정권을 돌려줄 초기에 다시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 날로 새로워진다'를 정녕한 경계로 삼았습니다. 대개 이 때, 태갑은 또 다시方且 잘못을 뉘우쳐自怨自艾, 桐에서 인에 처하고 의를 옮겨 돌아왔으니 이 또한 소위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그 경험嘗을 미루어 탕에게 고하여 그가 여기에서 날마다 나아가서 끊임이 없어 열조의 성덕을 잇게 하고자 했으니, 그 뜻이 또한 심절합니다! 그 후 주나라의 무왕이 임금의 자리를 계승踐阼한 초기에, 스승인 상보의 단서의 계를 받아 말하기를 '경건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자는 길하고, 태만함이 경건함을 이기는 자는 멸하고, 의로움이 욕망을 이기는 자는 화순從하고, 욕망이 의를 이기는 자는 흉하다'라고 하여 물러나 안석과 돗자리, 술잔과 그릇, 도와 검, 지게문과 들창에 명을 새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대개 탕의 기풍을 듣고 흥기한 자는 지금 그 남은 말을 오히려 다행히 자못 예와 서에서 볼 수 있으니, 다스리길 원하는 임금과 학문에 뜻을 둔 선비는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曰: “此言新民, 其引此, 何也?”
"이것은 신민을 말하는데, 이것을 끌어다 쓴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此自其本而言之. 蓋以是爲自新之至, 而新民之端也.”
"이것은 그 본으로부터 말한 것입니다. 대개 이것을 스스로 새롭게 하는 지극함으로 삼으니 백성을 새롭게 하는 단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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