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혹문1-1
或問: “一章而下, 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 而遂以爲傳之首章也”
"일장 이하로 삼장의 반에 이르기까지 정현 본에서는 원래 ‘沒世不忘’ 다음에 있었고, 정자는 ‘此謂知之至也’ 다음에 두었는데 그대는 홀로 어째서 그렇지 않음을 알고 마침내 전의 첫장으로 여긴 것입니까?"
曰: “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審矣.”
"경으로써 전을 통섭하고, 전으로써 경에 부합하면 그 순서를 알 수 있으니 두 설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대학혹문1-2
曰: “然則其曰‘克明德者’, 何也?”
"그러면 ‘克明德’이란 무엇입니까?"
曰: “此言文王能明其德也. 蓋人莫不知德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物欲蔽之於後, 是以雖欲明之而有不克也. 文王之心, 渾然天理, 亦無待於克之而自明矣. 然猶云爾者, 亦見其獨能明之, 而他人不能, 又以見夫未能明者之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
"이는 문왕이 그 덕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합니다. 대개 사람은 덕이 마땅히 밝혀져야 함을 알지 못함이 없어 밝히고자 하지만, 기품이 앞에서 얽매고, 물욕이 뒤에서 가리어, 비록 밝히고자 하지만 능히 해내지 못합니다. 문왕의 마음에는 혼연한 천리이니, 또한 능히 해냄을 기다리지 않고도 스스로 밝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또한 그가 홀로 밝힐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없음을 드러내고, 또한 밝힐 수 없는 자가 그 능히 해내는 공력에 이르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대학혹문1-3
曰: “‘顧諟天之明命’, 何也?”
"‘顧諟天之明命’이란 무엇입니까?"
曰: “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德非他也. 卽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於日用之間. 人惟不察於此, 是以汨於人欲, 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 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
"사람이 천지의 중을 받아 태어나기에, 사람이 덕을 밝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곧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이며 지선이 보존된 바입니다. 이는 그 전체 대용이 시시각각 일용지간에 발현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직 여기서 살피지 않아서 인욕에 골몰하여, 스스로 밝히고 항상 눈을 여기에 두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만약 앞에 참여하고 고삐에 의존함을 본다면, 천성이 보전되어成性存存 도의가 나올 것입니다."
대학혹문1-4
曰: “‘克明峻德’, 何也?”
"‘克明峻德’이란 무엇입니까?"
曰: “言堯能明其大德也.”
"요임금이 그 큰 덕을 밝힐 수 있음을 말합니다."
대학혹문1-5
曰: “是三者, 固皆自明之事也. 然其言之亦有序乎?”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도 또한 순서가 있습니까?"
曰: “康誥通言明德而已. 太甲則明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也. 帝典則專言成德之事, 而極其大焉. 其言之淺深, 亦略有序矣.”
"강고는 명덕을 통하여 말할 뿐입니다. 태갑은 하늘이 사람을 위하지 않은 적이 없고 사람이 하늘을 위하지 않은 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제전은 오로지 덕을 이루는 일을 말하여 그 큰 것을 지극히 합니다. 그 말의 얕고 깊음은 또한 대략 순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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