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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중용혹문 12

중용혹문 6, 7, 8, 9, 10

󰡔중용혹문󰡕6 或問: “此其稱舜之大知, 何也?” "여기서 순임금의 큰 지혜를 칭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曰: “此亦承上章之意言如舜之知而不過, 則道之所以行也. 蓋不自恃其聰明而樂取諸人者如此, 則非知者之過矣. 又能執兩端而用其中, 則非愚者之不及矣. 此舜之知所以爲大而非他人之所及也. 兩端之說呂楊爲優, 程子以爲執持過不及之兩端, 使民不得行, 則恐非文意矣. 蓋當衆論不同之際, 未知其孰爲過孰爲不及而孰爲中也. 故必兼總衆說以執其不同之極處而求其義理之至當, 然後有以知夫無過不及之在此而在所當行. 若其未然則又安能先識彼兩端者之爲過不及而不可行哉! "이는 또한 앞장의 뜻을 이어 만약 순임금의 지혜가 지나치지 않으면 도가 행해짐을 말한다. 대개 스스로 그 총명함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취하기를 즐김이 이와 같으면 지혜로운 자의 지나침이..

번역/중용혹문 2023.06.05

중용혹문 2-1~4, 3, 4

󰡔중용혹문󰡕2-1 或問: “此其稱仲尼曰, 何也?” "여기서 중니왈 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首章夫子之意而子思言之, 故此以下又引夫子之言以證之也.” "첫장의 공자의 뜻을 자사가 말했기에 이 다음에 다시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다." 曰: “孫可以字其祖乎?” "손자가 조부의 자를 부를 수 있습니까?" 曰: “古者生無爵死無諡, 則子孫之於祖考亦名之而已矣. 周人冠, 則字而尊其名, 死則諡而諱其名, 則固已彌文矣. 然未有諱其字者也. 故儀禮饋食之祝詞曰: “適爾皇祖伯某"父乃直以字而面命之, 况孔子爵不應諡, 而子孫又不得稱其字以別之, 則將謂之何哉! 若曰: “孔子", 則外之之辭, 而又孔姓之通稱. 若曰: “夫子", 則又當時衆人相呼之通號也. 不曰: “仲尼"而何以哉!” "옛날에 살아서 벼슬이 없고 죽어서 시호..

번역/중용혹문 2023.05.23

중용혹문 1-13

󰡔중용혹문󰡕1-13 曰: “程呂問答如何?” "정이천과 여대림(?)의 문답은 어떻습니까?" 曰: “考之文集, 則是其書. 蓋不完矣. 然程子初謂凡言心者, 皆指已發而言而後書乃自以爲未當, 向非呂氏問之之審而不完之中, 又失此書, 則此言之未當, 學者何自而知之乎, 以此又知聖賢之言, 固有發端而未竟者, 學者尤當虛心悉意以審其歸未可執其一言而遽以爲定也. 其說中字因過不及而立名, 又似倂指時中之中而與在中之義少異. 蓋未發之時在中之義謂之無所偏倚則可, 謂之無過不及, 則方此之時未有中節不中節之可言也. 無過不及之名亦何自而立乎? 又其下文皆以不偏不倚爲言, 則此語者亦或未得爲定論也. 呂氏又引允執厥中, 以明未發之旨, 則程子之說書也. 固謂允執厥中所以行之. 蓋其所謂中者乃指時中之中, 而非未發之中也. 呂氏又謂求之喜怒哀樂未發之時, 則程子所以答蘇季明之問, 又已有旣..

번역/중용혹문 2023.05.12

중용혹문 1-9~12

󰡔중용혹문󰡕1-9 或問: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何也?” "희노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중절한 것을 화라고 하고, 중이란 천하의 대본이며, 화란 천하의 달도이니,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화육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曰: “此推本天命之性以明由敎而入者, 其始之所發端, 終之所至極, 皆不外於吾心也. 蓋天命之性萬理具焉, 喜怒哀樂, 各有攸當, 方其未發渾然在中無所偏倚, 故謂之中, 及其發而皆得其當無所乖戾, 故謂之和, 謂之中者, 所以狀性之德, 道之體也. 以其天地萬物之理無所不該, 故曰: “天下之大本, 謂之和者, 所以著情之正, 道之用也. 以其古今人物之所共由, 故曰: “天下之達道. 蓋天命之性純..

번역/중용혹문 2023.05.11

중용혹문 1-6~8

󰡔중용혹문󰡕1-6 曰: “程子所謂隱微之際若與呂氏改本及游楊氏不同而子一之何耶?” "정자가 말한 은미할 때는 마치 여씨가 개본한 것과 유씨, 양씨와는 다른데 그대는 하나로 여겼으니 어째서입니까?" 曰: “以理言之,則三家不若程子之盡. 以心言之,則程子不若三家之密是固若有不同者矣. 然必有是理然後有是心. 有是心而後有是理, 則亦初無異指也. 合而言之亦何不可之有哉!” "리로써 말하자면 세 학자가 정자가 다한 것과 다릅니다. 심으로써 말하자면, 정자가 세 학자의 은밀함과 달라서 실로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시 이 리가 있은 연후 이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있은 이후에 리가 있다면 또한 애초에 다른 뜻이랄 게 없습니다. 합하여 말하는 것 또한 어찌 불가함이 있겠습니까!" 󰡔중용혹문󰡕1-7 曰: “他說如何?..

번역/중용혹문 2023.05.11

중용혹문 1-5

󰡔중용혹문󰡕1-5 或問: “旣曰: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矣. 而又曰: “莫見乎隱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 何也?”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래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신하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공구한다'라고 하고, "은미한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음을 삼간다'라고 하였는데 무엇입니까?" 曰: “此因論率性之道以明由敎而入者其始當如此. 蓋兩事也. 其先言道不可離而君子必戒謹恐懼乎其所不睹不聞者, 所以言道之無所不在, 無時不然, 學者當無須臾毫忽之不謹而周防之, 以全其本然之體也. 又言莫見乎隱莫顯乎微而君子必愼其獨者, 所以言隱微之間人所不見而已獨知之..

번역/중용혹문 2023.05.09

중용혹문 1-2~4

󰡔중용혹문󰡕1-2 曰: “率性修道之說不同, 孰爲是耶?” "솔성지위도 설은 다른데, 누가 옳은 것입니까?" 曰: “程子之論率性正就私意人欲未萌之處, 指其自然發見各有條理者而言, 以見道之所以得名, 非指修爲而言也. 呂氏良心之發以下至安能致是一節亦甚精密但謂人雖受天地之中以生而梏於形體又爲私意小知所撓, 故與天地不相似而發不中節. 必有以不失其所受乎天者然後爲道,則所謂道者又在修爲之後而反由敎以得之非復子思程子所指人欲未萌自然發見之意矣. 游氏所謂無容私焉, 則道在我, 楊氏所謂率之而已者, 似亦皆有呂氏之病也. 至於修道, 則程子養之以福, 修而求復之云, 却似未合子思本文之意, 獨其一條所謂循此修之各得其分, 而引舜事以通結之者爲得其旨, 故其門人亦多祖之但所引舜事或非論語本文之意耳. 呂氏所謂先王制禮, 達之天下, 傳之後世者, 得之, 但其本說率性之道處, 已失其..

번역/중용혹문 2023.05.08

중용혹문 1-1

󰡔중용혹문󰡕1-1 或問: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何也?”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는 무슨 뜻입니까?" 曰: “此先明性道敎之所以名, 以見其本皆出乎天而實不外於我也. 이는 먼저 성,도,교라고 이름붙인 까닭을 밝혀서 그것이 본래 모두 하늘에서 나왔지만 실제 나의 바깥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天命之謂性言天之所以命乎人者, 是 則人之所以爲性也. 천명지위성은 하늘이 사람에게 명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성으로 삼는 바입니다. 蓋天之所以賦與萬物而不能自已者命也. 대개 하늘이 만물에 부여하여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이 명입니다. 吾之得乎是命以生而莫非全體者性也. 내가 이 명을 얻어 태어나 전체가 아님이 없는 것이 성입니다. 故以命言之,則曰: “元亨利貞而四時五行庶類萬化莫不由是而出, 以性言之, ..

번역/중용혹문 2023.05.08

중용혹문0-5

󰡔중용혹문󰡕0-5 曰: “呂氏爲己爲人之說, 如何?” "여씨의 위기, 위인의 설은 어떻습니까?" 曰: “爲人者, 程子以爲欲見知於人者, 是也. 呂氏以志於功名言之, 而謂今之學者未及乎此, 則是以爲人爲及物之事, 而涉獵儌倖, 以求濟其私者, 又下此一等也. 殊不知夫子所謂爲人者, 正指此下等人爾. 若曰未能成己, 而遽欲成物, 此特可坐以不能知所先後之罪, 原其設心, 猶愛而公, 視彼欲求人知以濟一已之私而後學者, 不可同日語矣. 至其所謂立喜怒哀樂未發之中, 以爲之本, 使學者擇善而固執之者, 亦曰欲使學者務先存養, 以爲窮理之地耳. 而語之未瑩, 乃似聖人强立此中以爲大本, 使人以是爲準而取中焉, 則中者, 豈聖人之所强立, 而未發之際, 亦豈若學者有所擇取於其間哉! 但其全章大指, 則有以切中今時學者之病, 覽者誠能三復而致思焉, 亦可以感悟而興起矣.” "남을 위..

번역/중용혹문 2023.05.07

중용혹문0-3, 0-4

󰡔중용혹문󰡕0-3 曰: “此篇首章先明中和之義, 次章乃及中庸之說, 至其名篇, 乃不曰中和, 而曰中庸者, 何哉!” "이 편의 첫장은 먼저 중화의 뜻을 밝히고 다음 장은 곧 중용의 설에 이르는데, 이 편명에 이르면 중화라고 하지 않고 중용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中和之中, 其義雖精, 而中庸之中, 實兼體用. 且其所謂庸者, 又有平常之意焉, 則比之中和, 其所該者尤廣, 而於一篇大指, 精粗本末, 無所不盡, 此其所以不曰中和, 而曰中庸也.” "중화의 중은 그 뜻이 비록 정미하나 중용의 중은 실제 체용을 겸합니다. 게다가 그 소위 용이란, 또한 평상의 뜻이 있으니 중화에 비하여 그 갖춘 것이 더욱 광대하여 한 편의 큰 요지와 정미본말에 다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이것이 중화라고 하지 않고 중용이라고 한 까닭입니..

번역/중용혹문 202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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