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혹문1-9
或問: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何也?”
"희노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중절한 것을 화라고 하고, 중이란 천하의 대본이며, 화란 천하의 달도이니,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화육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曰: “此推本天命之性以明由敎而入者, 其始之所發端, 終之所至極, 皆不外於吾心也. 蓋天命之性萬理具焉, 喜怒哀樂, 各有攸當, 方其未發渾然在中無所偏倚, 故謂之中, 及其發而皆得其當無所乖戾, 故謂之和, 謂之中者, 所以狀性之德, 道之體也. 以其天地萬物之理無所不該, 故曰: “天下之大本, 謂之和者, 所以著情之正, 道之用也. 以其古今人物之所共由, 故曰: “天下之達道. 蓋天命之性純粹至善而具於人心者其體用之全本皆如此不以聖愚而有加損也. 然靜而不知所以存之, 則天理昧而大本有所不立矣. 動而不知所以節之, 則人欲肆而達道有所不行矣. 惟君子自其不睹不聞之前, 而所以戒謹恐懼者, 愈嚴愈敬以至於無一毫之偏倚而守之常不失焉, 則爲有以致其中而大本之立日以益固矣. 尤於隱微幽獨之際而所以謹其善惡之幾者愈精愈密以至於無一毫之差謬而行之每不違焉, 則爲有以致其和而達道之行日以益廣矣. 致者用力推致而極其至之謂, 致焉而極其至, 至於靜而無一息之不中, 則吾心正而天地之心亦正, 故陰陽動靜各止其所而天地於此乎位矣. 動而無一事之不和, 則吾氣順而天地之氣亦順, 故充塞無間驩欣交通而萬物於此乎育矣. 此萬化之本原, 一心之妙用, 聖神之能事, 學問之極功, 固有非始學所當議者, 然射者之的, 行者之歸, 亦學者立志之初, 所當知也. 故此章雖爲一篇開卷之首, 然子思之言, 亦必至此而後已焉, 其指深矣.”
"이는 천명의 성을 추본하여 가르침에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을 밝힌 것이니, 그 시작이 단서를 드러내는 바와, 끝이 극에 이르는 바가 모두 나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저 천명의 성은 만리를 갖추고 있어, 희노애락이 각기 마땅한 바가 있어 그것이 아직 발하지 않으면 혼연히 가운데에서 치우치거나 기대는 바가 없어 中이라고 이릅니다. 그것이 발하여 모두 그 마땅한 바를 얻어 어그러지는 바가 없어 和라고 이릅니다. 중이라고 하는 것은 성의 덕, 도의 체를 형상하는 것입니다. 그 천지만물의 리가 갖추지 않음이 없기에 '천하의 대본'이라고 말합니다. 화라고 하는 것은 정의 바름과 도의 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고금 인물이 공유하는 바이기에 '천하의 달도'라고 말합니다. 대저 천명의 성은 순수 지선하여 사람의 마음에 구비된 것으로, 그 체용의 전체가 본래 모두 이와 같아, 성인과 우둔한 자로도 더하거나 덜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요하여도 보존하는 바를 모르면 천리가 어두워 대본이 서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움직여도 절제하는 바를 모르면 인욕이 방자하여 달도가 행해지지 않는 바가 있습니다. 오직 군자가 스스로 그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기 전에 삼가고 두려워 함이 더욱 위엄있고 더욱 경건하여 한 터럭도 치우치거나 기대는 바가 없어 지키는 것이 항상 잃지 않게 됨에 이르니, 그 중에 이르러 대본이 서서 날마다 견고해질 것입니다. 더욱이 은미하고 유독한 때에 그 선악의 기미를 삼가는 것이 더욱 정밀하고 더욱 치밀하여 한 터럭도 그르침이 없어 행하는 것이 매번 어기지 않게 됨에 이르니, 그 화에 이르러 달도가 행해져서 날마다 광활해질 것입니다. 致라는 것은 힘써 미루어 다다라 그 지극함을 극진히 함을 이릅니다. 致하여 그 지극함을 극진히 하여 고요하면 한 순간도 중절하지 않음이 없으니, 내 마음이 바르게 되고 천지의 마음 또한 바르게 됩니다. 그래서 음양 동정이 각기 그 마땅한 바에 이르러 천지가 여기에서 서게 됩니다. 움직이면 한 가지 일도 화합되지 않음이 없으니, 내 기가 순하여 천지의 기 또한 순하게 됩니다. 그래서 틈도 없이 가득 채워 기쁨이 교통하여 만물이 여기에서 길러집니다. 이 만화의 본원, 일심의 묘용, 성인의 능사, 학문의 극공은 실로 처음 배우는 자가 마땅히 논의할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활쏘는 자의 과녁, 길가는 자의 지향歸은 또한 배우는 자가 뜻을 세우는 처음에 마땅히 알아야 할 바입니다. 그래서 이 장은 비록 책을 여는 첫머리이지만, 자사의 말은 또한 반드시 여기에 이른 이후에 그치게 되니 그 뜻이 깊습니다.
중용혹문1-10
曰: “然則中和果二物乎?”
"그러면 중화는 과연 두 가지입니까?"
曰: “觀其一體一用之名, 則安得不二, 察其一體一用之實, 則此爲彼體, 彼爲此用, 如耳目之能視聽, 視聽之由耳目初非有二物也.”
"그 한 가지 체, 한 가지 작용의 이름을 보면, 어찌 둘이 아니겠습니까? 그 한 가지 체, 한 가지 작용의 실제를 살피면, 이것이 그 체가 되고, 그것이 이 작용이 되는 것이, 마치 귀와 눈이 보고들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보고 듣는 것이 귀와 눈에서 말미암는 것은 애초에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용혹문1-11
曰: “天地位萬物育, 諸家皆以其理言, 子獨以其事論, 然則自古衰亂之世, 所以病乎中和者多矣. 天地之位, 萬物之育, 豈以是而失其常邪?"
"하늘이 자리 잡고 만물이 길러진다는 것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모두 그 리로써 말했는데, 그대는 유독 事로써 논했습니다. 그러니 자고로 쇠란한 세상에서 중화에 병통을 앓는 자가 많습니다. 천지가 자리하고, 만물이 길러짐이 어찌 이것으로 그 항상됨을 잃겠습니까?"
曰: “三辰失行, 山崩川竭, 則不必天翻地覆然後爲不位矣. 兵亂凶荒胎殰卵殈, 則不必人消物盡然後爲不育矣. 凡若此者豈非不中不和之所致而又安可誣哉! 今以事言者固以爲有是理而後有是事, 彼以理言者, 亦非以爲無是事而徒有是理也. 但其言之不備, 有以啓後學之疑, 不若直以事言而理在其中之爲盡耳.
해와 달과 별三辰이 운행을 멈추고, 산이 무너지고 냇물이 마르면, 반드시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엎어진 이후에 자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란이 일고 흉년이 들고, 아이를 유산하고, 알이 깨지면, 반드시 사람이 소멸하고 사물이 다한 이후에 길러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이와 같으니, 어찌 中하지도 和하지도 못하는 것이 이른 바가 아닌데, 또한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事로 말하는 것은 실로 이 리가 있은 이후에 이 일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니, 그들이 리로써 말하는 것 또한 이 일이 없고 다만 이 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말이 불비하여 후학들의 의심을 돋우어 직접 事로 말하여 리가 그 가운데 있다고 말하여 극진해지는 것만 못할 뿐입니다."
曰: “然則當其不位不育之時, 豈無聖賢生於其世, 而其所以致夫中和者乃不能有以救其一二, 何耶?”
"그러면 그 자리하지 못하고 길러지지 못할 때, 어찌 성현이 이 세상에 태어남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화에 이르는 근거로 그 하나 둘을 구할 수 없으니 어째서입니까?"
曰: “善惡感通之理亦及其力之所至而止耳. 彼達而在上者旣曰: “有以病之, 則夫災異之變又豈窮而在下者所能救也哉! 但能致中和於一身, 則天下雖亂而吾身之天地萬物不害爲安泰其不能者天下雖治而吾身之天地萬物不害爲乖錯其間, 一家一國莫不皆然此又不可不知耳.
"선악이 감통하는 이치는 또한 그 힘이 이르는 바에 그칠 뿐입니다. 그 도달하여 위에 있는 자가 말하기를 '병으로 삼으면, 재이의 변 또한 어찌 궁구하여 아래에 있는 자가 구제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 단지 일신에서 중화를 구할 수 있을 따름이다'라고 한다면, 천하가 비록 어지러워도 내 몸의 천지 만물이 편안하고 태평해지는 데 해가 되지 않고, 그 것이 불가한 자는 천하가 비록 다스려져도 내 몸의 천지 만물이 그 사이에 어그러지고 어긋나는 데 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가 일국이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이 또한 알지 못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曰: “二者之爲實事可也. 而分中和以屬焉將不又爲破碎之甚耶?”
"두 가지가 실제 일이 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중화를 나누어 귀속시키면, 장차 또한 세분화하는 것이 심하지 않습니까?"
曰: “世固未有能致中而不足於和者, 亦未有能致和而不本於中者也. 未有天地已位而萬物不育者亦未有天地不位而萬物自育者也. 特據其效而推本其所以然則各有所從來而不可紊耳.”
"세상은 실로 중에 이를 수 있지만 화하기 부족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화에 이를 수 있지만 중에 근본하지 않은 자도 없습니다. 천지가 이미 자리하였는데 만물이 길러지지 않는 것은 없고, 천지가 자리하지 못했는데 만물이 스스로 길러지는 것도 없습니다. 단지 그 공효에 근거하여 그 소이연을 추본하면 각기 그 소종래가 있어 어지러워질 수 없을 따름입니다."
중용혹문1-12
曰: “子思之言中和如此而周子之言, 則曰: “中者和也. 中節也. 天下之達道也. 乃擧中而合之於和然則又將何以爲天下之大本也耶?”
"자사가 중화를 말함이 이와 같은데, 주돈이는 말하기를 '중이란 화이다. 중절함이다. 천하의 달도이다.'라고 하였으니 중을 거론하여 화에 합하였습니다. 그러면 또한 장차 어찌 천하의 대본이 되겠습니까?"
曰: “子思之所謂中以未發而言也. 周子之所謂中以時中而言也. 愚於篇首已辨之矣. 學者涵泳而別識之見其並行而不相悖焉可也.”
"자사가 말한 중은 미발로 말한 것입니다. 주자가 말한 중은 시중으로 말한 것입니다. 제가 편 머리에 이미 분별하였습니다. 배우는 자는 함영하여 별도로 알고, 그 병행함을 알아 서로 어그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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