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대학은 공자가 남긴 글이며, 초학자들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오늘날 옛사람들이 학문함에 순서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편이 보존된 덕분賴이니, 논어, 맹자는 그 다음이다. 배우는 자가 필시 여기에 말미암아 배운다면 거의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程子曰:「親,當作新。」大學者,大人之學也。明,明之也。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但為氣稟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新者,革其舊之謂也,言既自明其明德,又當推以及人,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污也。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言明明德、新民,皆當至於至善之地而不遷。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此三者,大學之綱領也。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과 친하는 데 있고(or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지선에 머무는 데 있다. 정자께서 말씀하시길, "親은 마땅히 新이어야 한다." 대학이란, 대인의 학문이다. 명은 밝힌다는 것이다.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허령불매하여 중리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품에 구애되고 인욕에 가려지면 어두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본체의 밝음은 그친 적이 없다. 그래서 배우는 자는 마땅히 그 발하는 바에 인하여 마침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해야 한다. 新이란, 그 오랜 것을 혁신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그 명덕을 밝히고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 다다라 그로 하여금 그 오래 물든 더러움을 제거토록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止란,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옮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선이은 사리에 당연한 극치이다.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은 모두 마땅히 지선이 있는 곳에 이르러 옮겨서는 안 됨을 발한다. 대개 필시 천리의 극치를 다하여 한 터럭 만큼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강령이다.
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后,與後同,後放此。止者,所當止之地,即至善之所在也。知之,則志有定向。靜,謂心不妄動。安,謂所處而安。慮,謂處事精詳。得,謂得其所止。
그칠 곳을 안 이후에 안정되고, 안정된 이후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할 수 있은 이후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할 수 있은 이후에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할 수 있은 이후에 얻을 수 있다. 后는 後와 같다. 다음도 동일하다. 그친다는 것은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니, 지선이 있는 바이다. 안다는 것은 뜻이 정해진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이지 않음을 이른다. 편안하다는 것은 처하는 곳에 편안함을 이른다. 사려한다는 것은 일을 처리함이 정밀하고 상세함을 이른다. 얻는다는 것은 그칠 바를 얻음을 이른다.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明德為本,新民為末。知止為始,能得為終。本始所先,末終所後。此結上文兩節之意。
사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끝이 있으니, 선후되는 바를 안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명덕이 근본이고 신민은 말단이다. 그칠 곳을 아는 것이 시작이고 그칠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끝이다. 근본과 시작은 우선하는 바이고, 말단과 끝은 다음 가는 바이다. 이는 위 글 두 절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治,平聲,後放此。明明德於天下者,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心者,身之所主也。誠,實也。意者,心之所發也。實其心之所發,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致,推極也。知,猶識也。推極吾之知識,欲其所知無不盡也。格,至也。物,猶事也。窮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此八者,大學之條目也。
옛날에 천하에 명덕을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자는 먼저 그 가정을 고르게 하고, 그 가정을 고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자신을 닦고, 그 자신을 닦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 그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한 자는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하니,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에 나아감에 있다. 治는 평성이며 다음도 동일하다. 천하에 명덕을 밝히는 것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 명덕을 밝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은 몸의 주가 되는 바이다. 誠은 실답게 함이다. 意란 마음이 발하는 바이다. 그 마음이 발하는 바를 실답게 하는 것은 선에 한결같이 하고자 하여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다. 致는 미루어 지극히 함이다. 知는 아는 것이다. 나의 지식을 미루어 지극히 하는 것은 그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格은 다다름이다. 物은 事와 같다. 사물의 리를 궁구하고 다다르는 것은 그 지극한 곳에 도달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덟가지는 대학의 조목이다.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治,去聲,後放此。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知既盡,則意可得而實矣,意既實,則心可得而正矣。脩身以上,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
사물이 이른 후에 앎이 지극해지며,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이후에 가정이 고르게 되고, 가정이 고르게 된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治는 거성이며 다음도 동일하다. 사물이 이른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의 지극한 곳에 도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앎이 지극해진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는 바에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앎이 이미 다해지면, 뜻이 실다워질 수 있다. 뜻이 이미 실다워지면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 수신 이전은 명덕을 밝히는 일이다. 제가 다음은 신민의 일이다. 사물이 이르고 앎이 지극해지면 그칠 곳을 알게 될 것이다. 의성 다음은 모두 그칠 바를 얻는 순서이다.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脩身為本。壹是,一切也。正心以上,皆所以脩身也。齊家以下,則舉此而措之耳。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여긴다. 일시는 일체이다. 정심 이전은 모두 수신하는 것이다. 제가 다음은 이것(수신)을 가지고 처리措하는 것이다.
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本,謂身也。所厚,謂家也。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
그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지는 것은 없다. 그 두터울 바가 얇으며 그 얇을 바가 두터운 것은 없었다! 여기서 본은 身을 일컫는다. 두터울 바는 가정을 일컫는다. 이 두 구절은 앞 문장 두 구절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凡二百五字。
이 앞은 경 일장이니, 대개 공자의 말이며 증자가 받아적은 것이다. 모두 205자이다.
其傳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舊本頗有錯簡,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別為序次如左。凡千五百四十六字。凡傳文,雜引經傳,若無統紀,然文理接續,血脈貫通,深淺始終,至為精密。熟讀詳味,久當見之,今不盡釋也。
이 전 열장은 증자의 뜻이며 그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다. 구본은 자못 착간이 있어, 이제 정자가 정한 바에 기인하여 경문을 다시 고쳐서 별도로 순서를 만든 것이 다음과 같다. 모두 1546자이다. 전문은 경전을 잡스럽게 끌고 와 마치 체계統紀가 없는 것 같지만 문리가 이어지고 맥락이 관통하여 깊고 얕음 시작과 끝이 지극히 정밀하다. 숙독하고 자세히 음미하면 오래되어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이니 지금 다 해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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