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혹문0-1
或問: “名篇之義, 程子專以不偏爲言, 呂氏專以無過不及爲說, 二者固不同矣. 子乃合而言之, 何也?”
"편명의 뜻을 정자는 오로지 치우치지 않은 것으로 말했고, 여씨는 오로지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것으로 말했는데, 두 가지는 실로 같지 않습니다. 그대는 합하여 말했는데 어째서입니까?"
曰: “中, 一名而有二義, 程子固言之矣. 今以其說推之, 不偏不倚云者, 程子所謂在中之義, 未發之前無所偏倚之名也; 無過不及者, 程子所謂中之道也, 見諸行事各得其中之名也. 蓋不偏不倚, 猶立而不近四旁, 心之體地之中也. 無過不及, 猶行而不先不後, 理之當事之中也. 故於未發之大本, 則取不偏不倚之名; 於已發而時中, 則取無過不及之義, 語固各有當也. 然方其未發, 雖未有無過不及之可名, 而所以爲無過不及之本體, 實在於是; 及其發而得中也. 雖其所主不能不偏於一事, 然其所以無過不及者, 是乃無偏倚者之所爲, 而於一事之中, 亦未嘗有所偏倚也. 故程子又曰: ‘言和, 則中在其中; 言中, 則含喜怒哀樂在其中.’ 而呂氏亦云: ‘當其未發, 此心至虛, 無所偏倚, 故謂之中; 以此心而應萬事之變, 無往而非中矣.’ 是則二義雖殊, 而實相爲體用, 此愚於名篇之義, 所以不得取此而遺彼也.”
"中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정자가 본디 말한 것입니다. 지금 그 말을 미루어 보면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정자가 이른바 가운데에 있다는 뜻이니 아직 발하기 전에 치우치는 바가 없다는 이름입니다.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정자가 이른바 중의 도이니, 행사에 각기 그 중도를 얻는다는 이름에서 보입니다.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서서 사방에 가까이 하지 않아 마음의 몸체가 중심이 잡힌 것과 같습니다.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행하되 앞서가지도 뒤쳐지지도 않아 이치의 마땅한 일이 중도에 들어맞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미발의 대본에서는 치우치지 않는다는 이름을 취하고 이발하여 시중함에는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다는 뜻을 취한 것이니, 말에 실로 각기 마땅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 미발은 비록 지나침과 모자람이라 이름붙일 만한 게 없지만 지나침과 모자람의 본체가 되는 까닭이 실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발하여 중을 얻음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주된 바가 한 가지 일에 치우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지나침과 모자람이 없는 까닭은 바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하는 바이니, 한 가지 일 가운데 또한 치우치는 바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자가 말하기를 '和를 말하면 중이 그 가운데 있고, 中을 말하면 희노애락을 포함함이 그 가운데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씨 또한 말하기를 '미발에서는 이 마음이 지극히 허령하고 치우치는 바가 없어 中이라고 한다. 이 마음으로 만사의 변화에 응대하면 어딜 가든 中아님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두 뜻이 비록 다르지만, 실상은 체용관계가 됩니다. 이 사람이 편명의 뜻에서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남겨둘 수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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