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중용혹문

중용혹문 1-1

誠之 2023. 5. 8.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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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혹문󰡕1-1

或問: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何也?”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는 무슨 뜻입니까?"

: “此先明性道敎之所以名, 以見其本皆出乎天而實不外於我也. 이는 먼저 성,도,교라고 이름붙인 까닭을 밝혀서 그것이 본래 모두 하늘에서 나왔지만 실제 나의 바깥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天命之謂性言天之所以命乎人者, 是 則人之所以爲性也. 천명지위성은 하늘이 사람에게 명한 것이니, 이는 사람이 성으로 삼는 바입니다. 蓋天之所以賦與萬物而不能自已者命也. 대개 하늘이 만물에 부여하여 스스로 그치지 않는 것이 명입니다. 吾之得乎是命以生而莫非全體者性也. 내가 이 명을 얻어 태어나 전체가 아님이 없는 것이 성입니다. 故以命言之,則曰: “元亨利貞而四時五行庶類萬化莫不由是而出, 以性言之, 則曰: “仁義禮智而四端五典萬物萬事之理無不純於其間. 그래서 명으로 말하면 원형리정이며 사시오행과 서류만화가 여기에서 비롯되어 나오지 않음이 없고, 성으로 말하면 인의예지이며 사단오전과 만물만사의 이치가 그 사이에 순수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蓋在天在人雖有性命之分而其理則未嘗不一在人在物, 雖有氣稟之異而其理則未嘗不同, 此吾之性所以純粹至善而非若荀, 揚韓子之所云也. 대개 하늘에 있고, 사람에 있음은 비록 성과 명의 구분이 있지만 그 이치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치하지 않은 적이 없고, 비록 기품의 다름이 있지만 그 이치는 같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는 나의 성이 순수지선한 까닭이니, 순자, 양웅, 한유가 말한 바와 다릅니다. 率性之謂道言循其所得乎天以生者, 則事事物物莫不自然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 솔성지위도는 하늘에서 얻어서 태어난 것을 따르면, 사사물물에 자연히 각기 마땅히 행해야 하는 길이 있으니, 이것이 소위 도임을 말합니다. 蓋天命之性仁義禮智而已. 대개 천명의 성은 인의예지일 따름입니다.  循其仁之性, 則自父子之親以至於仁民愛物皆道也. 그 인의 성을 따르면 부자간의 친함에서부터 인민 애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입니다. 循其義之性, 則自君臣之分以至於敬長尊賢亦道也. 그 의의 성을 따르면 군신의 구분에서부터 어른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숭하는 것 또한 도입니다. 循其禮之性, 則恭敬辭讓之節文皆道也. 그 예의 성을 따르면 공경사양의 절문이 모두 도입니다. 循其智之性, 則是非邪正之分別亦道也. 지의 성을 따르면 시비사정의 분별이 또한 도입니다. 蓋所謂性者無一理之不具, 故所謂道者不待外求而無所不備. 소위 성이란 하나의 이치도 구비되지 않음이 없기에 소위 도란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갖추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所謂性者無一物之不得, 故所謂道者, 不假人爲而無所不周. 소위 성이란 한 사물도 얻지 못함이 없기에 소위 도란 인위를 빌리지 않고도 두루하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雖鳥獸草木之生, 僅得形氣之偏, 而不能有以通貫乎全體, 然其知覺運動, 榮悴開落, 亦皆循其性而各有自然之理焉. 비록 조수초목의 생이 다만 형기의 치우침을 얻어 전체를 관통할 수 없지만 그 지각운동은 무성하다 시들고 피었다 떨어지니 또한 모두 그 성을 따라 각기 스스로 그러한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至於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豺獺之報本, 雎鳩之有別, 則其形氣之所偏又反有以存其義理之所得尤可以見天命之本然, 初無間隔而所謂道者亦未嘗不在是也. 범과 이리의 부자관계,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 승냥이와 수달의 보은, 물수리의 암수구별은 그 형기의 치우친 바이지만 또한 도리어 그 의리의 소득을 보존하였으니, 더욱 천명의 본연이 처음에 간격이 없어 소위 도란 여기에 있지 않은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是豈有待於人爲而亦豈人之所得爲哉! 이것이 어찌 인위를 기다리며 또한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바이겠습니까! 修道之謂敎言聖人因是道而品節之以立法垂訓於天下, 是則所謂敎也. 수도지위교란 성인이 이 도에 인하여 품절로 나누어 천하에 수훈을 입법하였으니 이것이 소위 교입니다. 蓋天命之性率性之道皆理之自然而人物之所同得者也. 대개 천명의 성, 솔성의 도는 대개 리의 자연이며 사람과 사물이 함께 얻은 바입니다. 人雖得其形氣之正然其淸濁厚薄之稟亦有不能不異者, 是以賢知者或失之, 過愚不肖者或不能及而得於此者亦或不能無失於彼, 是以私意人欲或生其間而於所謂性者不免有所昏蔽錯雜而無以全其所受之正. 사람이 비록 형기의 바름을 얻었지만 청탁 후박의 기품이 또한 다르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때문에 현명하고 지혜로운자가 혹 잃기도 하고 지나치게 우둔하거나 불초한 사람이 혹 미칠 수 없어서 여기에서 얻은 것을 또한 혹 거기에서 잃어버림이 없을 수 없으니 사사로운 뜻과 인욕이 혹 그 사이에 생겨서, 소위 성에 어둡고 가려지고 뒤섞인 바가 있어 그 부여받은 바의 올바름을 온전히 할 수 없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性有不全, 則於所謂道者因亦有所乖戾舛逆而無以適乎所行之宜. 성에 온전하지 않음이 있으면 소위 도에 이로 인해 또한 어그러지고 뒤바뀐 바가 있어 행하는 바의 마땅함에 적합할 수 없게 됩니다. 惟聖人之心淸明純粹天理渾然無所虧闕, 故能因其道之所在而爲之品節防範以立敎於天下, 使夫過不及者有以取中焉. 오직 성인의 마음이 청명하고 순수하여 천리가 혼연히 이지러지거나 빠진 바가 없기에 그 도가 있는 바를 따라서 그로 인해 품절방범으로써 천하에 가르침을 세워 지나치거나 모자란 자로 하여금 중을 얻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蓋有以辨其親疏之殺而使之各盡其情, 則仁之爲敎立矣. 대개 친소지쇄를 변별하여 그로 하여금 각기 그 정을 다할 수 있으면, 인이라는 가르침이 세워질 것입니다. 有以別其貴賤之等而使之各盡其分, 則義之爲敎行矣. 귀천의 등급을 구별하여 그로 하여금 그 구분을 다할 수 있으면 의라는 가르침이 행해질 것입니다.  爲之制度文爲使之有以守而不失, 則禮之爲敎得矣. 그로 인해 제도문물을 그로 하여금 지켜서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으면 예라는 가르침이 얻어질 것입니다. 爲之開導禁止使之有以別而不差, 則知之爲敎明矣. 그로 인해 열고 이끌고 금지하여 그로 하여금 구별하여 어긋남이 없을 수 있다면 지라는 가르침이 밝아질 것입니다. 夫如是是以人無知愚事無大小皆得有所持循據守以去其人欲之私而復乎天理之正推而至於天下之物, 則亦順其所欲違其所惡因其材質之宜以致其用制其取用之節以遂其生皆有政事之施焉, 此則聖人所以財成天地之道而致其彌縫輔贊之功. 무릇 이와 같으면 따라서 사람에게 지혜로운 자와 우둔한 자가 없고 일에 대소가 없게 되어 모두 따르고 지키는 바가 있어 인욕의 사사로움을 없애고 천리의 바름을 회복하고, 미루어 천하의 사물에 이르면 또한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고 싫어하는 바를 어겨서 그 재질의 마땅함에 인하여 그 쓰임에 이르고 그 취하고 쓰는 절도를 제재하여 마침내 그 생이 모두 정사의 베풂이 있게 되니, 이것이 성인이 천지의 도를 길러서 그 미봉보찬하는 공에 이르게 되는 까닭입니다. 然亦未始外乎人之所受乎天者而强爲之也. 그러나 또한 사람이 하늘로 얻은 바의 밖에서 억지로 한 적이 없습니다. 子思以是三言著於篇首雖曰: “姑以釋夫三者之名義然學者能因其所指而反身以驗之, 則其所知豈獨名義之間而已哉!. 자사는 이 세 가지 말로써 이 편 머리에 드러내었으니, 비록 '다만 세 가지의 뜻을 풀었다'라고 말하더라도 배우는 자가 능히 그 가리키는 바에 따라 자신을 반성하여 증험하면 그 아는 바가 어찌 단지 명의의 사이일 뿐이겠습니까!  蓋有得乎天命之說, 則知天之所以與我者無一理之不備而釋氏之所謂空者非性矣. 대개 천명의 설을 얻는다면,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에 한 가지 이치도 구비되지 않음이 없고 석씨가 말한 공이란 성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有以得乎率性之說, 則知我之所得乎天者無一物之不該而老氏之所謂無者非道矣. 솔성의 설을 얻는다면, 내가 하늘에서 얻은 바에 한 사물도 갖춰지지 않음이 없고 노씨가 말한 무란 도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有以得乎修道之說, 則知聖人之所以敎我者莫非因其所固有而去其所本無, 背其所至難而從其所甚易而凡世儒之訓詁詞章管商之權謀功利老佛之淸淨寂滅與夫百家衆技之支離偏曲皆非所以爲敎矣. 수도의 설을 얻으면 성인이 나에게 가르친 바가 그 고유한 바에 인하여 본래 없는 바를 제거하여, 지극히 어려운 바를 등지고, 그 심히 쉬운 바를 따르지 않음이 없고, 무릇 세속의 유학자들의 훈고, 사장, 관중 상앙의 권모공리와 노불의 청정적멸과 백가 중기의 지리한 편곡들이 모두 가르침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由是以往因其所固有之不可昧者而益致其學問思辨之功, 因其所甚易之不能已者而益致其持守推行之力, 則夫天命之性率性之道豈不昭然日用之間而修道之敎又將由我而後立矣. 여기에서 나아가 그 고유한 바의 어두워질 수 없는 것에 따라 그 학문 사변의 공에 더욱 이르고, 그 심히 쉬운 바의 그칠 수 없는 것에 따라 그 견지하여 미루어 행하는 힘에 더욱 이른다면, 천명의 성, 솔성의 도가 어찌 일용지간에 소연하고 수도지교가 더욱 장차 나에게서 비롯된 이후에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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