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 1言人能盡其心, 則是知其性, 能知其性, 則知天也. 蓋天者, 理之自然, 而人之所由以生者也. 性者, 理之全體, 而人之所得以生者也. 心則人之所以主於身而具是理者也. 天大無外, 而性禀其全, 故人之本心, 其體廓然, 亦無限量. 惟其梏於形器之私, 滯於聞見之小, 是以有所蔽而不盡. 人能卽事卽物窮究其理, 至於一日會貫通徹而無所遺焉, 則有以全其本心廓然之體. 而吾之所以爲性與天之所以爲天者, 皆不外乎此而一以貫之矣.
'마음을 다하는 자는 본성을 안 것이니,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것이다.'라는 말은 사람이 그의 마음을 다할 수 있으면, 이것은 그의 본성을 아는 것이며, 그의 본성을 알 수 있으면 하늘을 안다는 것을 말한다. 대저 하늘이란 리(理)의 저절로 그러함이며, 사람이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이다. 본성이란 리의 전체이며, 사람이 얻어서 태어나는 것이다. 심(心)은 사람이 그것(心)으로 몸을 주재하고 이 이치를 구비하는 것이다. 하늘은 커서 밖이 없으나, 성은 그 전체를 품었으므로, 사람의 본심은 그 체가 확연하고 또한 한량이 없다. 오직 그것이 형기의 사사로움에 질곡되고 견문의 사소함에 가로 막혔기에, 가려지고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하여, 어느 날 관통하고 꿰뚫어 남기는 바가 없는 데에 이를 수 있으면, 그 본심의 확연한 체를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으로 본성으로 여기는 것과, 하늘이 그것으로 하늘로 여기는 것이 모두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로 관통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본성이 되는 까닭과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이 모두 여기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로 관통할 것이다.)
愚按 : '所以' 해석은 늘 어렵다... 뭔가 의미상 즉물, 궁리, 관통의 단계를 거쳐 본심을 全케 한다는 앞 내용의 맥락을 고려하면 소이의 '以'를 '以之'로 끌고와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후자의 의미를 곱씹어 봐도 '내가 본성이 되는 까닭(근거, 것 등등)과 하늘이 하늘되는 까닭'이 문구만 보면 멋진 말 같긴한데, 그래서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점도 있다.
주자의 『맹자집주』 「진심상」 1장 주석을 보면 진심은 지성 이후의 단계이다. 『주자어류』를 참고하면 '者' 자를 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이미' 본성을 알고 있는 자라는 말이다. 이 해석은 진심하면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된다는 해석과 완전히 반대된 해석이다. 상기 번역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번역했다. 전체적인 '진심설'을 보자면, 진심하게 되는 단계는 이미 즉물, 궁리, 관통하여 최종적으로 진심하게 된 것이다. 이 경지는 곧 본성을 다 실현, 구현했다는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단지 진심하려 한다면 무엇을 다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반드시 본성을 알고나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곧 진심이라는 것이다. 2 3 진심할 때의 심이란 자기 안에 구비된 이치를 격물궁리하여 파악된 이치이며, 진심은 그것을 실천하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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