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庸首章說
“中庸曰: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何也?” 曰: “天命之謂性, 渾然全體, 無所不該也. 率性之謂道, 大化流行, 各有條貫也. 脩道之謂敎, 克己復禮, 日用工夫也. 知全體然後條貫可尋而工夫有序. 然求所以知之, 又在日用工夫下學上達而已矣.”
"중용에서 말하길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이르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이른다'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이른다는 것은 혼연히 전체가 갖추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는 것은 큰 교화가 유행하여 각기 조리가 있다는 것이다. 도를 닦는 것을 교라 이른다는 것은 자기를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일상의 공부이다. 전체를 안 이후에 조리를 찾을 수 있고 공부에 순서가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방법을 구하는 것은 또한 일상의 공부하고 아래에서 배워 위로 도달하는 데 달려있을 뿐이다."
又曰: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賭,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何也?” 曰: “率性之謂道, 則無時而非道, 亦無適而非道, 如之何而可須臾離也? 可須臾離, 則非率性之謂矣. 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蓋知道之不可須臾離, 則隱微顯著未嘗有異, 所以必愼其獨而不敢以須臾離也. 然豈怠於顯而偏於獨哉? 蓋獨者致用之源, 而人所易忽, 於此而必謹焉, 則亦無所不謹矣.”
또 말했다. "'도라는 것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다.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래서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데에서 계신하고 그 들리지 않는 데에서 공구하니, 은미함보다 드러나는 것은 없고 미세함보다 나타나는 것은 없다. 그래서 군자는 그 홀로 있음을 삼간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이른다면 때마다 도 아님이 없고, 또한 가는 곳마다 도 아님이 없으니 어찌 잠시라도 떨어질 수 있겠는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있다면 성을 따른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데에서 계신하고 그 들리지 않는 데에서 공구하니, 대개 도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음을 안다면 은미하고 현저함이 다름이 없고, 그리하여 반드시 그 홀로 있음을 삼가고 감히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드러남에 안주하고 홀로 있음에 치우치겠는가? 홀로 있음이란 쓰임을 다하는 근원이나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바이니, 여기에서 필시 삼간다면 또한 삼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喜怒哀樂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何也? ’ 曰: ‘天命之性, 渾然而已. 以其體而言之, 則曰中; 以其用而言之, 則曰和. 中者, 天地之所以立也, 故曰大本. 和者, 化育之所以行也, 故曰達道. 此天命之全也. 人之所受, 蓋亦莫非此理之全. 喜怒哀樂未發, 是則所謂中也. 發而莫不中節, 是則所謂和也. 然人爲物誘而不能自定, 則大本有所不立. 發而或不中節, 則達道有所不行. 大本不立, 達道不行, 則雖天理流行末嘗間斷, 而其在我者或幾乎息矣. 惟君子知道之不可須臾離者, 其體用在是, 則必有以致之, 以極其至焉. 蓋敬以直內, 而喜怒哀樂無所偏倚, 所以致夫中也. 義以方外, 而喜怒哀樂各得其正, 所以致夫和也. 敬義夾持, 涵養省察, 無所不用其戒謹恐懼, 是以當其未發而品節已具, 隨所發用而本體卓然, 以至寂然感通, 無少間斷, 則中和在我, 天人無間, 而天地之所以位, 萬物之所以育, 其不外是矣.’
"'희노애락이 발하기 전을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중절함을 화라고 이른다. 중이란 천하의 대본이다. 화란 천하의 달도이다.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하고 만물이 길러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늘이 명한 성은 혼연할 따름이다. 그 체로 말하자면 중이라 이른다. 그 용으로 말하면 화라고 이른다. 중이란 천지가 서는 근거이다. 그래서 대본이라고 말한다. 화란 화육이 행해지는 근거이다. 그래서 달도라고 말한다. 이는 천명의 전체이다. 사람이 받은 바는 대개 이 전체의 이치 아님이 없다. 희노애락이 발하기 전이라면 이른바 중이다. 발하여 중절하지 않음이 없다면 이른바 화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물에 이끌려 스스로 정하지 못하면 대본이 서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발하여 혹 중절하지 못하면 달도가 행하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대본이 서지 못하고 달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비록 천리의 유행이 끊인 적이 없었더라도, 그 내게 있는 것이 혹 거의 그칠 것이다. 오직 군자가 도가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음을 안다면 그 체용이 여기에 있으니 반드시 그것을 다하여 그 지극함을 극진하게 할 수 있다. 경하여 안을 곧게 하여 희노애락이 치우치는 바가 없는 것은 중에 이르는 방법이다. 의로움으로 바깥을 방정하게 하여 희노애락이 각기 그 바름을 얻는 것은 화에 이르는 방법이다. 경과 의를 굳게 지켜 함양하고 성찰하면 그 계신공구를 쓰지 않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 발하지 않았을 때 품절이 이미 갖춰지고 발용하는 바를 따라도 본체가 탁연하여 적연 감통함에 이르러 조금도 끊임이 없다면 중화가 내게 있어 하늘과 사람에 틈이 없어 천지가 자리하는 근거와 만물이 길러지는 근거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번역 > 주자문집 선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극설 太極說 주희집 권67 (0) | 2024.06.29 |
---|---|
진심설 盡心說 주희집 권67 (0) | 2024.06.28 |
정자양관설 程子養觀說 주희집 권67 (1) | 2024.05.31 |
이발미발설 已發未發說 주희집 권67 (0) | 2024.04.25 |
원형리정설 元亨利貞說 주희집 권67 (1) | 2024.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