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주자문집 선독

정자양관설 程子養觀說 주희집 권67

誠之 2024. 5. 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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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子養觀說

 

程子曰: "存養於未發之前則可" [각주:1] , 又曰: "善觀者却於已發之際觀之"[각주:2], 何也?
정자가 말하길 "아직 발하기 전에 존양하면 괜찮다" 라고 하시고, 또한 "잘 관찰하는 자는 오히려 이미 발했을 때 관찰한다"라고 했는데 어째서입니까?  

曰: ‘此持敬之功貫通乎動靜之際者也. 就程子此章論之, 方其未發, 必有事焉, 是乃所謂靜中之知覺,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 及其已發, 隨事觀省, 是乃所謂動上求靜, 艮之所以止其所也. 然則靜中之動, 非敬其孰能形之? 動中之靜, 非敬其執能察之? 故又曰: "學者莫若先理會敬, 則自知此矣. "[각주:3]然則學者豈可舍是而他求哉? ’
이는 경을 견지하는 공부가 움직임과 고요한 때를 관통하는 것이다. 정자의 이 구절에 나아가 논하자면, 바야흐로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에도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으니, 이는 이른바 고요한 가운데의 지각이니, 복괘의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이미 발함에 이르면 일에 따라 관찰하고 성찰하니, 이는 이른바 움직임에서 고요함을 구하는 것이니, 간괘의 머물 바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은 경이 아니면 그 누가 그것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은 경이 아니면 그 누가 그것을 관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또한 말하니, "배우는 자에게 경을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인 게 없으니 (경할 수 있으면) 저절로 이것을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배우는 자가 어찌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구할 수 있겠는가?

 

  1.  『이정유서』 권18, "又問吕學士言, 當求於喜怒哀樂未發之前, 信斯言也, 恐無著模, 如之何而可. 曰看此語如何. 地下若言, 存養於喜怒哀樂未發之時, 則可. 若言求中於喜怒哀樂未發之前, 則不可." [본문으로]
  2. 『이정유서』 권18,  "曰固是所為皆中然, 而觀於四者, 未發之時, 靜時, 自有一般氣象, 及至接事時, 又自別何也. 曰者, 不如此, 卻於喜怒哀樂已發之際觀之." [본문으로]
  3. 『이정유서』 권18, "學者莫若且先理㑹得敬, 能敬則自知此矣."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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