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대학혹문

대학혹문 5-2 (1)

誠之 2025. 1. 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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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혹문󰡕5-2

: “此經之序, 自誠意以下, 其義明而傳悉矣. 獨其所謂格物致知者, 字義不明, 而傳復闕焉, 且爲最初用力之地, 而無復上文語緖之可尋也. 子乃自謂取程子之意以補之, 則程子之言, 何以見其必合於經意, 而子之言, 又似不盡出於程子, 何耶?”
(혹자가) 말했다. "이 경의 순서는 '성의' 이후로 그 뜻이 분명하고 전이 갖춰져 있습니다. 오직 여기서 이른바 '격물치지'라는 것은 글자의 뜻이 분명하지 않고, 전이 다시 빠져있는데다가 또한 가장 처음 힘써야 할 곳이 되면서도 다시 앞 문장 말의 순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이에 스스로 정자의 뜻을 취하여 보충하였다고 말씀하셨으니, 정자의 뜻이 어떻게 반드시 경문의 뜻에 부합하는 것을 알았으며, 선생님의 말 또한 모두 정자에게서 나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어째서입니까?"

: “或問於程子曰: ‘學何爲而可以有覺也?’ 程子曰: ‘學莫先於致知. 能致其知, 則思日益明, 至於久而後有覺爾. 書所謂思曰睿, 睿作聖, 董子所謂勉强學問, 則聞見博而知益明, 正謂此也. 學而無覺, 則亦何以學爲也哉?’” 或問: “忠信則可勉矣, 而致知爲難, 奈何?”  
말했다. "어떤 이가 정자에게 묻기를, '학문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정자가 말하길, '학문은 치지보다 우선하는 게 없다. 그 앎을 이룰 수 있으면 사려가 날마다 더욱 밝아지고 오래됨에 이른 이후에 깨달음이 있을 뿐이다. 『서경』에서 이른바 '생각을 睿라고 한다. 睿는 성인을 만든다'[각주:1]
라고 하였으며, 동중서가 이른바 힘써 학문하면 견문이 널어지고 앎이 더욱 밝아진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일컫는다. 배우고도 깨달음이 없다면 또한 어찌 학문을 하겠는가? 어떤 이가 묻기를, '충신(忠信)은 노력할 수 있습니다만 치지는 어려우니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다.
程子曰: ‘誠敬固不可以不勉, 然天下之理不先知之, 亦未有能勉以行之者也. 故大學之序, 先致知而後誠意, 其等有不可躐者. 苟無聖人之聰明睿智, 而徒欲勉焉以踐其行事之迹, 則亦安能如彼之動容周旋無不中禮也哉? 惟其燭理之明, 乃能不待勉强而自樂循理爾.
정자가 말하기를, '성경(誠敬)은 진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없지만, 천하의 리는 먼저 알지 못하고 또한 노력하여 힘쓸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다. 그래서 대학의 순서는 먼저 치지한 이후에 성의하고 그 순서는 건너뛸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성인의 총명예지가 없으면서 단지 노력하여 그 행사의 흔적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또한 어찌 그와 같이 모든 움직임에 예에 들어맞지 않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오직 리의 밝음을 밝히는 것이 곧 억지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치를 즐거이 따를 수 있을 따름이다.
夫人之性, 本無不善, 循理而行, 宜無難者, 惟其知之不至, 而但欲以力爲之, 是以苦其難而不知其樂耳. 知之而至, 則循理爲樂, 不循理爲不樂, 何苦而不循理以害吾樂耶? 昔嘗見有談虎傷人者, 衆莫不聞, 而其間一人神色獨變, 問其所以, 乃嘗傷於虎者也. 夫虎能傷人, 人孰不知, 然聞之有懼有不懼者, 知之有眞有不眞也. 學者之知道, 必如此人之知虎, 然後爲至耳. 若曰知不善之不可爲而猶或爲之, 則亦未嘗眞知而已矣.’ 此兩條者, 皆言格物致知所以當先而不可後之意也.  [각주:2]
무릇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하지 않음이 없어서 이치를 따라 행함에 마땅히 어려움이 없으나, 오직 그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서도 단지 힘써 행하려 하기에, 그 어려움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할 따름이다. 아는 것이 지극하다면, 이치를 따르는 것이 즐겁고 이치를 따르지 않음이 즐겁지 못하니 어찌 고통스레 이치를 따르지 않음으로 나의 즐거움을 해치겠는가? 옛날에 일찍이 호랑이가 상해를 입힌 자를 보고도 여러사람들은 듣지 않음이 없었지만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정신과 안색이 홀로 변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일찍이 호랑이에게 상해를 입은 자였다. 무릇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음을 사람이 누군들 알지 못하겠냐마는 그것을 듣고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앎에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가 도를 아는 것에 필시 이 사람이 호랑이를 아는 것과 같은 이후에 지극해질 따름이다. 만약 불선함을 행해서는 안됨을 알면서도 여전히 때로 행한다고 말한다면, 진실로 알지 못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 조목은 모두 격물치지가 응당 우선되고 뒤가 될 수 없는 이유인 뜻을 말한다.'라고 했다.    

  1. 『서경』, 「주서·홍범」, 二、五事:一曰貌,二曰言,三曰視,四曰聽,五曰思。貌曰恭,言曰從,視曰明,聽曰聰,思曰睿。恭作肅,從作乂,明作哲,聰作謀,睿作聖。 [본문으로]
  2. 이정유서, 권18, "問, 忠信進德之事, 固可勉强, 然致知甚難. 曰, 子以誠敬為可勉强, 且恁他説到底, 須是知了方行得. 若不知只是覷, 却堯學他行事, 無堯許多聰明睿知, 怎生得如他動容周旋中禮. 有諸心, 必形諸外, 徳容安可妄學. 如子所言是篤信而固守之, 非固有之也. 且如中庸九經, 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堯典克明峻德, 以親九族, 親親本合在尊賢上, 何故却在下, 須是知所以親親之道, 方得. 未致知, 便欲誠意, 是躐等也. 學者固當勉强, 然不致知, 怎生行得. 勉强行者, 安能持久, 除非燭理明, 自然樂循理, 性本善, 循理而行, 是順理. 事本亦不難. 但為人不知旋安排著, 便道難也. 知有多少般數, 然有深淺, 向親見一人曽為虎所傷, 因言及虎神色便變傍, 有數人見佗説虎, 非不知虎之猛可畏. 然不如佗説了有畏懼之色, 蓋眞知虎者也. 學者深知亦如此, 且如膾炙貴公子與野人, 莫不皆知其美. 然貴人聞著, 便有欲嗜膾炙之色, 野人則不然. 學者須是眞知纔知得是便泰然行將去也. 某年二十時, 解釋經義與今無異. 然思今日覺得意味, 與少時自别."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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