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혹문4
或問: “聽訟一章, 鄭本元在‘止於信’之後, ‘正心修身’之前, 程子又進而置置之經文之下, ‘此謂知之至也’之上, 子不之從而置之於此, 何也?”
혹자가 물었다. "' 聽訟' 장은 정현본에 원래 ' 止於信' 뒤, ' 正心修身' 앞에 들어있었다가, 정자가 다시 나아가 경문 다음, ' 此謂知之至也' 앞에 배치시켰는데, 선생님은 이것을 따르지 않고 여기에 배치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曰: “以傳之結語考之, 則其爲釋本末之義可知矣. 以經之本文參之, 則其當屬於此可見矣. 二家之說有未安者, 故不得而從也.”
말했다. "전(傳)의 맺음말로 보자면, 이것이 '본말'의 뜻을 풀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經)의 본문으로 보자면, 이것이 응당 여기에 속함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정현, 정자)의 설은 편치 못한 바가 있으므로 따를 수 없었다."
曰: “然則聽訟無訟, 於明德新民之義, 何所當也?”
말했다. "그렇다면 '송사를 들음에 송사를 없게 하겠다'라는 것이 '명덕', '신민'의 뜻에 어떻게 해당됩니까?"
曰: “聖人德盛仁熟, 所以自明者, 皆極天下之至善, 故能大有以畏服其民之心志, 而使之不敢盡其無實之辭, 是以雖其聽訟無以異於衆人, 而自無訟之可聽. 蓋己德旣明, 而民德自新, 則得其本之明效也. 或不能然, 而欲區區於分爭辨訟之間, 以求新民之效, 其亦末矣. 此傳者釋經之意也.”
말했다. "성인의 덕이 융성하고 인이 무르익어 스스로 밝히는 것이 모두 천하의 지선을 지극하게 하므로, 크게 그의 백성들의 심지를 두렵게 할 수 있고, 그들로 하여금 감히 그들의 진실되지 않은 마음을 다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 때문에 비록 그가 송사를 듣는 것이 뭇사람들과 다름이 없지만 자연히 들을 만한 송사가 없게 되었다. 대개 자기의 덕이 이미 밝아서 백성의 덕이 스스로 새로워졌으니, 그 근본의 밝은 공효를 얻은 것이다. 혹여 이러하지 못했는데, 분쟁하고 송사를 다투는 사이에 구속되어 백성을 새롭게 하는 공효를 구한다면, 그것은 또한 말단이다. 이것이 송사장이 경전을 풀이한 뜻이다."
曰: “然則其不論夫終始者, 何也?”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처음과 끝(終始)' 1 을 논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古人釋經, 取其大略, 未必如是之屑屑也. 且此章之下, 有闕文焉, 又安知其非本有而幷失之也(耶? )?”
말했다. "옛사람들이 경전을 풀이할 때 그것의 대략적인 것을 취하고, 반드시 이와 같이 자질구레하지는 않았다. 또한 이 장 다음에 빠진 글(闕文)이 있었으니 또한 어찌 이것이 본래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아울러 잃어버린 것을 알겠는가?"
- 『대학』 「경1장」 :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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