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대학혹문

대학혹문 0-2

誠之 2023. 5. 6.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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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혹문󰡕0-2

曰: “然則此篇所謂‘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者, 亦可得而聞其說之詳乎?” "그러면 이 편에서 소위 '명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라고 한 것 또한 그 말의 상세함을 들을 수 있습니까?"

曰: “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천도가 유행하여 만물을 발육하고,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일뿐입니다. 소위 음양오행이란, 또한 필시 리가 있은 이후에 기가 있습니다. 만물을 생하는 데 이르러서는 또한 필시 기의 응취에 인한 이후에 형체가 있게 됩니다.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그래서 사람과 사물이 생할 때 반드시 이 리를 얻은 연후에 건순인의예지의 성이 있을 수 있고, 반드시 이 기를 얻은 여후에 혼백오장백골의 몸이 있을 수 있습니다.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주돈이 선생이 말한 '무극의 진과 이오의 정이 묘합하여 응취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그러나 그 리로 말하자면 만물은 일원이니 실로 사람과 사물에 귀천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기로 말하자면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으면 사람이 되고, 그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으면 사물이 되니 따라서 혹은 귀하고 혹은 천하여 고를 수 없습니다.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그 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형기의 치우침과 막힘에 구속되어 그 본체의 완전함을 채우지 못합니다.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오직 사람이 태어남에 그 기의 바르고 통한 것을 얻어 그 성이 가장 귀하니 그래서 마음 속이 허령통철하여 만리가 다 갖춰지니 대개 금수와 다르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고, 요순이 되어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을 도울 수 있는 근거가 밖에 있지 않으니 소위 명덕이라는 것입니다. 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又有不能同者. 必其上智大賢之資乃能全其本體, 而無少不明, 其有不及乎此, 則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蔽而失其全矣. 그러나 그 통하는 것이 혹 청탁의 다름이 없을 수 없고 그 바름이 혹 미악의 다름이 없을 수 없으니 그래서 그 부여받은 바탕이 맑은 자는 지혜롭고 탁한 자는 우둔하며 아름다운 자는 현명하고 악한자는 불초하니 또한 같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상지 대현의 자질을 기필해야 그 본체를 온전히 할 수 있고 조금도 밝지 않음이 없으니 그것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그 소위 명덕이란 것이 가려짐이 없을 수 없어 그 완전함을 잃게 될 것입니다. 况乎又以氣質有蔽之心, 接乎事物無窮之變, 則其目之欲色, 耳之欲聲, 口之欲味, 鼻之欲臭, 四肢之欲安佚, 所以害乎其德者, 又豈可勝言也哉! 하물며 기질에 의해 가려짐이 있는 마음이 사물의 무궁한 변화에 접하면 그 눈은 색을 좇고, 귀는 소리를 좇고, 입은 맛을 좇고, 코는 냄새를 좇고, 사지는 안일함을 좇으니 그 덕을 해하는 것을 또한 어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二者相因, 反覆深固, 是以此德之明, 日益昏昧, 而此心之靈, 其所知者不過情欲利害之私而已. 두가지는 서로 원인이 되어 반복되고 견고해져서 이 덕의 밝음이 날마다 혼매해지고 이 마음의 영묘함이 그 아는 바는 정욕 이해의 사사로움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是則雖曰: 有人之形, 而實何以遠於禽獸, 雖曰: 可以爲堯舜而參天地, 而亦不能有以自充矣. 이러하니 비록 사람의 형체가 있다고 말한들 실제로 어찌 금수와 다르겠으며, 비록 요순이 되어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들 또한 스스로 채우지도 못할 것입니다.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其本體已洞然矣. 그러나 본래 밝은 체는 하늘에서 얻어 끝내 어두울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리하여 비록 그 혼폐함이 극에 달해도, 잠깐 한번 깨달음이 있으면, 곧 그 틈 가운데 그 본체가 이미 통연할 것입니다. 是以聖人施敎, 旣已養之於小學之中, 而復開之以大學之道. 그래서 성인이 가르침을 베풀 때 이미 소학 가운데서 배양하셨고, 대학의 도로써 다시 열어주셨습니다. 其必先之以格物致知之說者, 所以使之卽其所養之中, 而因其所發, 以啓其明之之端也; 繼之以誠意·正心·修身之目者, 則又所以使之因其已明之端, 而反之於身, 以致其明之之實也. 반드시 격물치지의 설을 우선하여 그로 하여금 그 배양한 바의 한 가운데로 나아가서 그것이 발하는 바로 인해 그 밝히는 단서를 열게 하였습니다. 夫旣有以啓其明之之端, 而又有以致其明之之實, 則吾之所得於天而未嘗不明者, 豈不超然無有氣質物欲之累, 而復得其本體之全哉! 이미 그 밝히는 단서를 열 수 있고 또 그 밝히는 실상에 이를 수 있으면 내가 하늘에서 얻어 밝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 어찌 초연히 기질 물욕의 얽매임이 없어 다시 그 본체의 완전함을 얻지 않겠습니까! 是則所謂明明德者, 而非有所作爲於性分之外也. 그러면 소위 명덕을 밝힌다는 것은 성 바깥에서 작위하는 바가 아닙니다.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소위 명덕이란 또한 사람마다 똑같이 얻은 바로, 내가 사사로움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向也俱爲物欲之所蔽, 則其賢愚之分, 固無以大相遠者. 일찍이 모두 사물에 의해 가려졌다면, 그 현명하거나 우둔한 구분은 실로 서로 크지 않을 것입니다. 今吾旣幸有以自明矣,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沒溺於卑汚苟賤之中而不自知也, 豈不爲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 지금 내가 요행히 스스로 밝힐 수 있다면, 그 여러 사람이 여기에서 함께 얻었으나 스스로 밝히지 못하고 미혹되어 낮초 더럽고 구차하고 천한 가운데로 기꺼이 떨어지고자 해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찌 그들을 위해 측연히 구제할 바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故必推吾之所自明者以及之, 始於齊家, 中於治國, 而終及於平天下, 使彼有是明德而不能自明者, 亦皆有以自明, 而去其舊染之汚焉, 是則所謂新民者, 而亦非有所付畀增益之也. 그래서 반드시 내가 스스로 밝힌 바를 미루어 도달하고 제가에서 시작하여 치국에 도달하여 평천하에서 끝마치고 그들로 하여금 이 명덕이 있어도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바를 모두 스스로 밝히게 하고 오래 물든 더러움을 제거하게 한다면 이것이 소위 신민이란 것이며 또한 전해주어 증익시키는 바가 아닙니다. 然德之在己而當明, 與其在民而當新者, 則又皆非人力之所爲, 而吾之所以明而新之者, 又非可以私意苟且而爲也. 덕이 나에게 있는 것은 마땅히 밝히고, 백성에게 있어 마땅히 새롭게 하는 것은 또한 사람의 힘으로 하는 바가 아니며, 내가 밝히고 새롭게 하는 것은 또한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是其所以得之於天而見於日用之間者, 固已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程子所謂‘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이 하늘에서 얻어 일용지간에 드러나는 것은 실로 이미 각각 본연의 일정한 원칙을 갖고 있지 않음이 없으니 정자가 말한 '그 의리정미한 지극함으로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이니 그리하여 다만 지선이라고 명목화한 것입니다. 而󰡔傳󰡕所謂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 乃其目之大者也. 그런데 '전'에서 말한 임금의 인, 신하의 경, 아들의 효, 아비의 자애로움, 사람들과의 믿음은 그 명목 가운데 큰 것들입니다. 衆人之心, 固莫不有是, 而或不能知, 學者雖或知之, 而亦鮮能必至於是而不去, 此爲大學之敎者, 所以慮其理雖粗復而有不純, 已雖粗克而有不盡, 且將無以盡夫修己治人之道, 故必指是而言, 以爲明德·新民之標的也. 여러 사람들의 마음은 실로 이것을 갖고 있지 않음이 없으나 혹은 알지 못하고, 배우는 자가 비록 혹여 알더라도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 이것이 대학의 가르침이 되니, 그 이치가 비록 성글게 회복되었으나 불순함이 있고 이미 비록 성글게 극복되어도 부진함이 있어 장차 수기치인의 도를 다하지 못함을 고려하여 그래서 반드시 이것을 가리켜 말하여 명덕 신민의 표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欲明德而新民者, 誠能求必至是而不容其少有過不及之差焉, 則其所以去人欲而復天理者, 無毫髮之遺恨矣. 덕을 밝혀 백성을 새롭게 하려는 것은 진실로 반드시 여기에 이르고자 하여 조금의 과불급의 차를 용납치 않을 수 있어야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회복함에 터럭 만큼의 남음도 없게 될 것입니다. 大抵󰡔大學󰡕一篇之指, 總而言之, 不出乎八事, 而八事之要, 總而言之, 又不出乎此三者, 此愚所以斷然以爲󰡔大學󰡕之綱領而無疑也. 대저 '대학'일편의 요지는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덟가지 일을 벗어나지 않고, 여덟가지 일의 요점을 총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가지를 벗어나지 않으니, 이 우매한 사람도 단연코 '대학'의 강령으로 여겨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然自孟子沒而道學不得其傳, 世之君子各以其意之所便者爲學. 그러나 맹자가 돌아가신 이후 도학이 그 전승을 얻지 못하고 세상의 군자가 각기 그 뜻의 편한 바를 학문으로 삼았습니다. 於是乃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愛身獨善, 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畧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狃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그래서 그 명덕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다만 정교법도를 신민으로 삼기 충분하다고 여기고, 또한 자신 만을 아끼고 독선하여 스스로 명덕을 밝히기 충분하다 말하며 신민하는 데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두가지를 마땅히 힘써야 한다고 대략적으로 알며 다만 작은 성취에 안일하고 가까운 이익에 익숙해져서 지어지선이 있는 바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是皆不考乎此篇之過, 其能成己成物而不謬者鮮矣. 이는 모두 이 편의 지나침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자신과 사물을 이루어 그르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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